글

아케인 (자매관계, 영상미, 헥스테크)

주말 밤에 별 생각 없이 틀었다가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자리를 못 뜬 적 있으신가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아케인》이 저한테 딱 그랬습니다. 처음엔 그냥 화려한 액션물이겠거니 했는데, 두 자매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을 보다 보니 어느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이 글에서는 직접 시청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케인》이 왜 단순한 게임 원작 애니메이션이 아닌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자매관계: 사랑이 왜 이렇게 아프게 느껴질까요 《아케인》의 중심에는 바이와 파우더, 그리고 훗날 징크스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두 자매가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몇 화는 그냥 언니 동생이 티격태격하는 흔한 관계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가족 드라마로 설명이 안 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바이의 감정은 보호 본능(protective instinct), 즉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지키려는 본능적인 충동에서 비롯됩니다. 이 본능이 강할수록 상대방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생기는데, 작품은 그 지점을 아주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바이가 파우더를 지키려 할수록 파우더는 오히려 자신이 짐이라는 느낌을 받는 구조입니다. 징크스로 변해가는 파우더의 이야기는 트라우마(trauma), 그러니까 과거의 충격적인 경험이 현재의 행동과 판단력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가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순간 어떤 방향으로 꺾이는지, 그 과정이 너무 생생해서 보는 내내 불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게 작품이 제대로 된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여전히 사랑하면서도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없다는 설정, 혹시 여러분 주변에도 이런 관계 하나쯤은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이 자매를 보면서 제 가족 관계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게 이 작품이 기억에 남는 진짜 이유인 것 같습니다. 영상미: 애니메이션이 이렇게까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아케인》을 처음 틀었을 때 제가 가장 ...

더 웨이브 (노르웨이 재난, 현실감, 가족 서사)

솔직히 처음엔 그냥 유럽판 재난 블록버스터려니 하고 틀었습니다. 그런데 30분쯤 지나자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노르웨이 게이랑에르 피오르드의 풍경이 아름다울수록, 오히려 불안해지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됐거든요. 아름다운 곳이 가장 위험한 곳이 될 수 있다는 설정, 여러분은 한 번이라도 의심해본 적 있으신가요? 노르웨이 재난 — 피오르드가 무기가 되는 순간 《더 웨이브》의 배경은 노르웨이 서부의 게이랑에르(Geiranger) 피오르드입니다. 피오르드란 빙하가 깎아 만든 좁고 깊은 협곡형 해안 지형으로,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자연 경관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아름다운 지형 구조가 동시에 재난의 증폭 장치가 된다는 점입니다. 양쪽이 산으로 막혀 있는 좁은 수로에 거대한 파도가 밀려들면, 파도는 에너지를 잃지 못하고 그대로 마을을 향해 달려옵니다. 영화는 이 지형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주인공 크리스티안 아이코르드를 지질학자로 설정합니다. 지질학(Geology)이란 암석, 지층, 지각 변동 같은 지구의 물질적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크리스티안의 직업 설정이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산의 미세한 움직임을 수치로 읽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수치가 위험 신호를 보낼 때, 확신도 없이 수천 명에게 대피 명령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이 장면에서 가장 몰입했던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크리스티안이 이상 징후를 발견했을 때, 그는 영웅처럼 즉시 경고 버튼을 누르지 않습니다. 동료들과 자료를 다시 검토하고, 망설이고, 시간을 씁니다. 실제 재난 현장에서도 경보를 발령하는 결정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지를 이 영화는 꽤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노르웨이는 실제로 이런 재난 위험 지역에 실시간 지반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수자원에너지부(NVE)의 자연재해 경보 시스템 을 보면, 산사태와 눈사태에 대한 지역별 위험 등급을 상시 공개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그냥 상상으로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보...

아웃포스트 (지형, 전우애, 전쟁의 현실)

전쟁 영화를 볼 때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사실적이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웃포스트》를 보고 나서 그 믿음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200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제로 벌어진 캄데시 전투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제가 그동안 전쟁 영화에서 기대해 왔던 것들을 하나씩 반박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지형: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하는 전쟁 전쟁 영화는 보통 군인들이 어느 정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거나, 최소한 비슷한 조건에서 싸운다는 인상을 줍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웃포스트》에서 키팅 전초기지(COP Keating)의 위치를 처음 봤을 때 할 말을 잃었습니다. 키팅 전초기지란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산악지대에 설치된 미군 거점으로, 사방이 높은 산으로 완전히 둘러싸인 형태입니다. 쉽게 말하면 분지 바닥에 텐트를 치고, 주변 절벽 위에 적이 내려다보는 구조입니다. 군사 전술에서 이런 상황을 데파일드(defiladed) 위치라고 부릅니다. 데파일드란 지형지물 때문에 아군이 오히려 적에게 완전히 노출된 상태를 의미하는데, 교과서적으로는 절대 피해야 할 배치입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기지를 유지해야 했던 이유는 현지 주민과의 관계 형성이라는 임무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저기에 기지를 뒀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는데, 그 답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이 영화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 봤는데, 미 육군 공식 전투 기록 에 따르면 당시 기지 배치에 대한 논란은 전투 이전부터 내부에서도 제기됐습니다. 그럼에도 기지를 철수하지 않은 채 전투를 맞이하게 된 맥락은, 영화가 화면으로만 담기에는 분명히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그 점이 이 작품의 아쉬움 중 하나라고 봅니다. 전략적 판단의 배경까지 더 깊이 파고들었다면 전투 장면의 무게감이 배가되었을 것입니다. 전우애: 추상적 단어가 구체적 행동으로 바뀌는 순간 "전우애"라는 말은 솔직히 이...

익스펜더블 3 (출연진, 세대교체, 동료애)

제가 극장에서 예고편을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실베스터 스탤론과 해리슨 포드, 멜 깁슨이 한 화면에 나온다는 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어릴 때 각자의 대표작을 따로 보던 배우들이 같은 영화에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익스펜더블 3은 꽤 묵직한 기대감을 안고 시작되는 작품입니다. 출연진의 무게감, 세대 간 충돌, 그리고 동료애라는 세 가지 축으로 이 영화를 들여다봤습니다. 출연진 — 이 조합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볼거리다  익스펜더블 3의 캐스팅은 흔히 앙상블 캐스팅이라고 부릅니다. 앙상블 캐스팅이란 특정 주연 한 명에 집중하는 대신 개성 있는 배우 여러 명을 균등하게 배치하는 방식으로, 관객이 각자 좋아하는 배우를 통해 영화에 진입할 수 있게 합니다. 이 영화는 그 방식을 최대치로 밀어붙였습니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바니 로스 역으로 중심을 잡고, 제이슨 스타뎀이 리 크리스마스로 그 곁을 지킵니다. 여기에 멜 깁슨이 악당 콘래드 스톤뱅크스를 맡고, 해리슨 포드가 CIA 요원 맥스 드러머로 등장하며, 웨슬리 스나입스가 닥터 데스로 합류합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이 배우들이 단순히 이름값으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스타일로 장면에 에너지를 불어넣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만 이런 구성이 꼭 서사의 완성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제한된 상영 시간 안에 이 많은 인물을 고르게 다루기란 구조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부 배우는 등장 분량이 기대보다 적어서 아쉽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저도 그 부분은 공감이 됩니다. 출연진의 숫자와 캐릭터의 깊이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이 영화가 증명합니다. 세대교체 — 베테랑을 내보내고 신예를 들인 선택 영화 중반부에서 바니 로스는 기존 익스펜더블 대원들을 임무에서 제외하는 결단을 내립니다. 스톤뱅크스의 반격으로 오랜 동료들이 부상을 입자, 더 이상 그들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없다는 판단에서입니다. 그 자리를 채운 건 빠른 반응속도와 첨단 장비 ...

졸트 리뷰 (설정, 액션, 반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차라리 전기로 몸을 지지면 어떨까, 한 번쯤 상상해보신 적 없으신가요? 2021년에 개봉한 액션 영화 《졸트》는 바로 그 황당한 발상을 진짜 설정으로 밀어붙인 작품입니다. 저는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과연 이게 진지하게 볼 수 있는 영화인지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몰입해서 봤습니다. 분노 조절 장애를 설정으로 만든다는 것 영화의 핵심 설정은 주인공 린디가 겪는 간헐적 폭발 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입니다. 간헐적 폭발 장애란 사소한 자극에도 충동적으로 분노가 폭발하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정신 질환으로, 실제로 임상 현장에서 진단되는 상태입니다. 영화는 이 장애를 진지하게 다루기보다는 장르적 과장의 출발점으로 활용합니다. 린디는 멘치 박사가 개발한 전기 충격 조끼(electroshock vest)를 항상 몸에 두르고 다닙니다. 전기 충격 조끼란 분노가 임계치에 달하는 순간 버튼을 눌러 고압 전류를 신체에 흘려보내, 신경계를 일시적으로 마비시켜 충동을 억제하는 장치입니다. 말하자면 감정을 기계로 끄고 켜는 셈인데, 이 설정이 처음에는 황당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 이 설정이 단순한 코미디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느꼈습니다. 분노를 느낄 때마다 스스로를 지져야 한다는 상황 자체가, 감정을 억누르며 사회 속에서 버티는 사람의 고충을 비틀어서 표현한 것처럼 읽히기도 했습니다. 영화가 그 지점을 깊이 파고들지 않아서 아쉽기는 했지만, 설정 자체의 아이디어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케이트 베킨세일의 맨몸 액션, 실제로 보면 어떤가 《졸트》를 볼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케이트 베킨세일의 액션을 꼽겠습니다. 《언더월드》 시리즈에서 흡혈귀 전사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총보다 주먹과 발을 훨씬 많이 씁니다. 근접 격투(Close Quarters Combat), 즉 CQC 방식의 액션이 주를 이룹...